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벨라루스-튀르키예 관계 (문단 편집) == 역사적 관계 == [[킵차크 칸국]]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[[리투아니아 대공국]]은 벨라루스를 포함한 [[루테니아]] 일대로 영토를 급격하게 확장하였으며, 이 과정에서 15세기 전후하여 [[토크타미쉬 칸]]이 리투아니아의 [[비타우타스 대공]]에게 부하들을 이끌고 귀순하기도 하였다. 이들은 후술할 [[립카 타타르]]의 기원이 되었다.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킵차크 칸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크림 반도의 칸들을 지원하였는데 1430년부로 하지 기레이가 킵차크 칸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[[크림 칸국]]이 건국되었다. 하지 기레이는 처음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측에 지원을 구하였으나, 당시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보르스클라 강 전투에서 한 차례 대패했던 경험에다가 서쪽에서 독일 [[튜튼 기사단]]과의 전쟁에 몰두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크림 칸국을 예속화하는데 실패했다. 하지 기레이의 뒤를 이어 크림 칸국의 칸이 된 멩글리 기레이는 자청하여 [[오스만 제국]]의 [[번국]]이 되었다. 이후 [[크림 칸국]]이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루테니아 영토 각지를 약탈했는데, 벨라루스 지역 역시 우크라이나에 비하면 피해가 적었다 뿐이지 심지어 흑해 반대편 발트해 [[빌뉴스]]에서도 [[크림 타타르]]의 약탈과 인신매매를 피하기 위해 성벽을 건설해야 할 정도로 피해가 막심하였다. 다른 한편으로 벨라루스 각지에 정착한 [[립카 타타르]]인들의 경우 폴란드-리투아니아 동군연합과 뒤이은 [[폴란드-리투아니아 연방]]에 충성하였다. 이들은 종교적으로는 오스만 술탄의 권위를 존중하였으나 이와는 별개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군사 귀족 신분으로 폴란드-리투아니아에 충성하였다. 본격적인 두 나라의 외교 관계는 [[소련 해체]] 이후부터였다. [[1992년]] 3월 25일에 양국은 수교를 맺었다. 벨라루스는 [[2020 아르메니아-아제르바이잔 전쟁]]에서 튀르키예를 지지한 바가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